회사의 어린 개발자 한 명은 가끔 나에게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들을 들려준다. 사업부서는 다르지만 명색이 기획사업부에 속해있는지라 그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있는 편인데…
문제는, 그의 ‘아이디어’를 들을 때마다 내가 부정적으로 답변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어느날 들어버렸다는 것. 왠지 ‘말이 통하지 않아…’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기우.
고리타분한 꼰대가 되어버린 느낌.
그러나 반대로, 그 친구 역시 단상적인 아이디어가 아닌, 제대로 된 사내 제안을 할 줄 알 필요가 있겠다.
그 친구의 첫 제안은 아마도 일본워크샵때로 기억하는데, 그 때 우리 회사에도 사내제안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 때부터도 나는 그 의견에 반대(?)를 했었는데, 내 생각은, 사내제안제도가 없는 것이 문제는 아니라는 것…
그럼 무엇이 문제일까?
단편적인 아이디어 개진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고 진정으로 통용될만한 사내제안을 하기 위해 알아야할 것들…을 다룬 책 두 권 소개로 갈음해본다.
The One Page Proposal – 패트릭 G. 라일리 지음, 안진환 옮김/을유문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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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파트가 아니거나 경험이 부족한 친구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 자신이 뭘 말하고 싶은지 전달을 못한다는 점’.
대개 이렇다. 어떤 아이디어가 생각난다. 스스로 생각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냥 생각난 대로 입밖에 내고 만다. 끝.
정반대의 경우는 이렇다. 어떤 아이디어가 생각난다. 스스로 생각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가능한한 모든 근거를 끌어들여 2백페이지의 제안서를 만들어 제출한다. 끝.
이 두가지 경우 모두 적절하지 않다. 전자는 피상적이고 즉흥적인 결론을 통해 그 속에 숨겨진 진의를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 표면적인 부분만 말하고 만다. 예컨대, 야근수당을 지급하면 야근효율이 올라가지 않을까요.. 라는 제안은 애초에 최근 늘어난 야근이 정규근무시간에서의 업무 비효율때문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상태일 수도 있다.
후자는, 대부분 그러한 제안을 받아들이는 입장이 자신보다 상급자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개 쓰레기통으로 쳐박히는 지름길이다. 아마도 상급자는 자신보다 기술적으로 뒤쳐지거나, 상대적으로 고루할 수는 있겠으나, 한가지 더 나은 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판단하려면 그것에 대해 콕 찝어줘야 한다. 대개 상급자의 시간비용은 제안자의 시간비용보다 비싸기 마련. 심지어 2백페이지의 제안서를 만드는 데 제안자가 사용한 시간비용보다 상급자가 그걸 읽는데 드는 시간비용이 더 비쌀 수도 있다. (연봉이야기가 아님.)
한 페이지로 정리되지 않는다면 방향을 잃어버렸다고도 할 수 있다. 한 페이지 안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모두 담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 페이지로 줄이느라 이런 저런 요소들이 빠지는 것을 두려워 말 것. 대개 상급자가 월급을 더 받는 이유는 그런 부분을 감안하여 의사결정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한 페이지로 상급자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면 추가되어야 할 부가요소들은 추후에 잘 정리해서 2백 페이지쯤으로 해서 실무자에게 전달할 때에나 필요한 것.
당신의 기업을 시작하라 – 가이 가와사키 지음, 김동규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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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사내제안의 경우 ‘무책임’으로 흐르기 쉽다. ‘이런 상품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요?’ 수준.
물론 제안자 본인은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제안하는 것이겠지만, 회의적인 상급자를 설득시키려면 확신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보통 그 무언가는 ‘실증’이 될 텐데, 예를 들어 제안을 뒷받침하기 위한 통계, 시뮬레이션, 프로토타입 기타 등등 여러가지가 될 터이다.
이런 것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제안은 그저 제안일 뿐.
‘우리 회사에서도 SNS 서비스를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제안을 상급자에게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서비스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과 리소스, 수요예측, 예상 실적, 마케팅 방안… 여러 가지 자료들이 필요한데, 이런 것들을 아무리 삐까뻔쩍한 기획서로 만들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그건 니 희망사항이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가장 확실한 방법은, 1/10 혹은 1/100 사이즈로 모형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
업무 외 시간에 약간의 개인 시간을 희생해서 자신이 만들고 싶던 SNS 서비스를 작게 한번 만들어보는 것. 완성이 되지 않아도 좋고, 성공하지 않아도 좋다. 미완이면 미완인 대로 가능성이 보일 단계가 되면 그 때,
‘저 혼자 틈틈히 30시간의 투입으로 간단히 만들어본 모형입니다. 현재 제 개인친구들한테만 공개해두었고 사용반응은 이 정도로 호의적입니다. 이 결과로 미루어 만약 회사에서 8명의 팀을 조직해서 정식으로 개발해본다면 4개월 후 이러저러한 형태로 오픈하여 성공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면 아마도 90%는 채택될테다. (당연히 해당 팀조직의 책임위치로 승진할 것이고.)
만약 그 가치를 몰라보아서 채택이 안된다면, 퇴사해서 독립하거나, 경쟁사에 팔면 됨… 🙂
그러려면 혼자서 스타트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사내제안용 실무서는 아니지만, 사내제안을 하려거든 최소한 창업하는 마인드로 시작하라는 바램으로 권해본다.
0개의 댓글
egoing · 2011-01-12 06:05
살짝 다른 이야기인데요. 저의 경우 사내에서 실현되기 어렵거나, 제 포지션을 봤을 때 안드로메다에 속하는 아이디어는 그냥 포스팅으로 산화시켜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