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에 썼던 글을 다시 올림. 조만간 “Tag, 완벽한 멍청함”이라는 제목으로 후속편을 올리기 위해…
어쩌다보니 계속 태그에 대한 부정적인 글만 쓰게 된다. 어쩌랴, 실제로 나 자신은 납득할 수 없는걸.
* 태그, 과연 꿈의 도구인가?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SF 팬덤내에서는 유명한 홍인기님의 홈페이지를 MovableType을 이용해 만들어드린 적이
있었다. 당시, 그 분의 요구중에, “하나의 글을 다양한 경로로 접근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있었다. 예컨데, “1960년대,
미국작가, 청소년용, 인공지능”이라는 분류를 글에 부여하고, 각각을 통해 해당 글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MT는 여전히, 영감을 가득 주는 CMS툴인데, 멋진 기능 중 하나는 바로 멀티카테고리였다. 다단 카테고리와는 달리, 단계별
카테고리를 제공하는 대신, 여러개의 카테고리를 하나의 글에 부여할 수 있고, 각각에 대해 글을 모을 수 있는 기능을 제공했다.
인기님은 각각의 글에 주의깊게 준비된 카테고리 목록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글에 대한 체계적이면서도 다양한 인덱싱이 가능하게 했다.
껍데기만 보면 완벽한 “태그”이다.
이 말은 뒤집어서 말하자면, “태그”란 결국 멀티카테고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WP나 TT, Egloos등에서 멀티카테고리를 지원하지 않으므로, 하나의 카테고리로 담아버리기엔 왠지 엉성해지다보니 태그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된 듯 한데, (추가 : WP에도 멀티 카테고리가 된다.)
이는 전적으로 컨텐츠 생산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태그의 효용이다. 컨텐츠 생산자가 붙이는 태그는, 생산자 본인에게는 매우 유용하고
의미있는 분류체계이지만,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정보의 노드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불필요한 잉여정보일 뿐이다.
그러니까, WP나 TT등의 블로그툴에서, 작성자 본인을 위해서 사용하는 태그라면 나름대로 쓸만하겠지만, 이것을 집단지성으로 결부시키는 것은 무리하고 멍청한 시도이다.
아주 간단한 비유 하나.
만약 글 작성자들에게 자신이 방금 작성한 글에 대해 스스로 별점을 매기게 한다고 해보자. 자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글은 5점, 그저 그런 글은 1점.. 이런 식으로.
이 점수 매기기는 글 작성자 본인에게는 꽤 유용하다. 예를 들자면 5점짜리 글들만 모아보기. 같은 것, 매우 괜찮은 분류법이다. 혹은 이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다. 내 블로그의 4점 이상 글들만 읽어주세요.. 라든가.
그러나 독자 입장에서 이 별점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글 쓴이가 5점을 주었다고 해서 독자도
5점을 줄 것인가. 또는 글쓴이는 가치없다고 생각하는 1점짜리 글이라도, 어떤 독자에게는 5점짜리 컨텐츠일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longtail의 입장에서는.
이런 것을 감안해 볼 때, “XXX님이 쓴 5점짜리 글모음”이라는 아카이빙은 독자에게는 오히려 객관적인 정보획득을 방해하는
무익한 일이다. 따라서 어떤 메타 서비스에서 “여러 블로거들의 (자칭) 5점짜리 글모음”이라는 섹션을 만들어 두어봤자, 그것이
개개 독자들한테는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물론, 그 섹션에 글이 등록된 필자 자신에게는 유의미할지는 몰라도.
아마도, 구체적인 대상을 뭉뚱그려버린 “대다수의 블로거”들에게는 그 섹션이 그나마 “읽을만한 것”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반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대체 그 뭉뚱그려진 “대다수의 블로거”와 세상에서 오직 유일한 “나 자신”이 어떻게
동일시될 수 있는가.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 개인은 모르겠지만, 대다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애매모호한 컨셉이 비즈니스모델이
될 수는 없다.
위 비유에서 “별점”을 “태그”로 바꾸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태그”는 folksonomy의 한계 이상을 벗어날 수 없다. folksonomy의 본질은 “유희”나 “경험마케팅”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새로운 정보 분류법-정보분류의 헤게모니 이동-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정작 그 결과가 컨텐츠 생산자의
자기만족일 뿐이라면 핀트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있는 셈이다.
본시, folksonomy란, 생산자의 일방적 분류법에 반대하여 소비자의 의지를 기준으로 하는 분류체계를 말함이 아니던가.
헌데, 막상 여기저기에서 회자되는 태그의 사용법은 고작 컨텐츠 생산자의 또다른 일방적 분류법에 지나지 않았다. 그 뿐이라면
나름대로 생산자 개인에게는 가치있는 분류법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모아서 web2.0이라는 딱지를 슬그머니 붙여놓아봤자 도대체
그것을 무엇에 쓴단 말인가. 일견 무언가 대중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 해보이지만, 환상일 뿐이다.
무한개의 쓰레기통을 가져다 놓고 니들 맘대로 담아봐라, 대신 딱지는 멋지게 붙여주마… 라고 한들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집단지성이 적어도 현재의 생산자중심 태그형태로 발현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집단감성이 발현될 가능성은 100에
수렴한다.)
이것은 태그 자체의 무정형, 중복가능성, 오류가능성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런 것들은 태그 자체의 단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다만 무리하게 생산자 중심 태그로 적용하려다보니 문제로 보이는 것 뿐이다. 애초에 개인한테만 가치있는 것을
무리하게 다수에게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려다 보니 발생하는 것들. 그러니 Tag Suggest란 얼마나 바보같은 짓거리란 말인가.
내 맘대로 태그를 붙이지 못하고, 남들과 같은 태그를 붙이라니 그럴거면 뭐하러 태그를 붙이냐는 거지. 애초에 태그 자체란,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새로운 분류를 위해서가 아니었나?
혹자는 Tag Suggest를 무시하고, 개인적으로 붙이면 되는 문제가 아니겠냐라겠지만, 이 경우에는 소위 Tag를 중심으로한 메타서비스들은 졸지에 자가당착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처음부터 핀트를 잘못 맞춘 셈이다.
* 태그는 무용한가?
그렇지 않다.
1) 주의깊게 훈련된 생산자가 역시 주의깊게 작성된 태그를 사용할 경우 정보분류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준다. 이것은 소비자에게도
유의미하다. 그러나 적어도 개인 블로그 정도에서의 생산자 중심 태그는 생산자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불필요하다.
2) 역시 전문적으로 훈련된 편집자가 역시 주의깊게 작성된 태그를 생산된 컨텐츠에 붙일 경우 이것도 정보의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 태그는 아니지만 슬래쉬닷컴의 편집시스템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3) 소비자가 자신만의 태그를 타인의 컨텐츠에 부여할 때 비로소 태그의 진정한 위력이 발생한다.
“개인”을 중심으로 보자면, 그가 붙인 태그가 “웹 2.0″이든, “web 2.0″이든, “webbb 2.0″이든, 혹은
“web 3.0″이든 심지어 “쓰잘데기없는 헛소리”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이렇게 자기 맘대로 붙일 수 있을 수록 그
자신에게는 더 유용하다.
실제로, 특정 태그에 어떤 글이 달려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이것은 생산자 중심 사고 방식이다. 태그에 글이 종속된다는
것, 이것은 기존 카테고리 중심 분류체계의 이름만 바꾼 셈이다.), 그 글에 어떤 태그가 달려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이것은
소비자가 태그를 붙인다는 전제하에, 개인에서 집단으로 대상을 넓힐 때 의의가 있다. “왕의남자”라는 태그에 어떤 글들이
달려있는가보다는(이것은 해당 키워드로 검색하는 것보다 하등 나은 결과를 낼 이유가 없다), “왕의 남자”라는 영화비평에 어떤
태그가 붙어있는가가 다른 사람들이 그 글에 대해 이해하고 분류하는데 더 가치가 있게 된다.
del.icio.us가 뜨게 된 이유는 개개인이 새롭게 분류가치를 줄 수 있어서이고, 아마존의 태그가 유용한 이유는, 다른
소비자들이 붙인 태그가 나에게 도움이 되어서이다.(절대로, 출판사가 붙이는 태그였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집단지성이란
표현을 쓰려면 최소한 그러한 전제는 깔고 들어가야 한다. 그저 태그 클라우드 제공한다고 집단지성이 하늘에서 뚝떨어진다면 박지성이
웃을 일이다. (미안하다. 농담인데 안 웃긴 것 같다.)
3줄 결론.
컨텐츠 생산자가 붙이는 태그는 제한된 효용만 준다.
그렇게 제한된 효용만 주는 생산자 중심의 태그만 모아봤자 의미없는 노이즈의 집합이나 다름없다.
태그는 소비자가 붙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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