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敎養)”은 원래, 독일어 “Bildung”이 일본에 소개되어 한자어로 번역된 단어이다. 독일어에서 Bildung은 동사 bilden(만들다)에서 나왔고, 영어의 build/building과 대응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독일에서 “교육”은 Erziehung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zieh(en)이 “끌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교육은 누구(무엇)인가가 끌어주는 피동적인 개념이다. 반면에 “교양은” Bildung 단어가 의미하듯 “쌓아가는” 것으로, 개인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를 필요로 한다.

교양은 단순히 지식이나 상식을 많이 갖추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계몽주의 시기 독일의 지식인들은 der gebildete innerlich Mensch (내면적으로 완성된 인간 = 교양인)을 목표로 삼았다. 사실 그리스시대로 거슬러올라가는 “이상”에 대한 갈망이라 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이상적인 이미지(Bild)를 추구하는(bilden) 과정이 교양(Bildung)인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부르주아/자유민, 사상적으로는 교양인이 되어, 기존의 신분귀족제 체제를 전복시키고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부르주아는 Burg(도시)에 사는 사람을 의미했다.)

교양은 단순히 매너를 익히거나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내면을 다듬고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는 일종의 양식미를 필요로 하는데, 여기서 양식미란 삶의 미학적 측면과 관련된다. 교양은 인간의 내적 세계가 조화롭고 균형 있게 발전하도록 이끄는 힘을 지니며, 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삶을 보다 아름답고 품격 있게 만들어갈 수 있다.

양식미를 중시하는 교양의 개념은 독일의 고전적 인문주의 전통에서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괴테와 실러 같은 인물들은 교양을 인간 내면의 조화로운 발전과 연결 지었으며, 이를 통해 단순한 기능적 존재를 넘어 진정한 의미의 인간으로 거듭날 것을 강조했다. 교양은 단지 ‘잘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교양을 통해 형성된 인간은 단순히 학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보유한 것을 넘어,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립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구현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교양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자연,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일종의 삶의 방식이 된다. 교양 있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단지 기능적, 효율적인 측면에서만 평가하지 않고, 그 행동이 지닌 미적 가치와 윤리적 의미를 동시에 고려한다. 이는 곧 삶을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이러한 점에서 교양은 어떤 고정된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쌓아가고 다듬어 나가야 하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더 나아가 사회와 자연, 궁극적으로는 인류 전체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 다시 말해, 교양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자기 형성(Selbstbildung)’의 중요한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교양 Bildung”이라는 책에서 교양있는 사람은 축구경기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곧이 곧대로 축구이야기를 하는게 교양없어보인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고보니 움베르토 에코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군.)

교양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종의 ‘게임’으로 볼 수 있다. 이 게임은 단순한 경쟁이나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삶과 가치관을 조화롭게 조율하고, 공감과 이해를 통해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과정이다. 게임의 목적은 상대방을 압도하거나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고유한 경험과 가치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문화 예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때 교양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단지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화의 흐름에 맞추어 적절하게 지식을 공유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며, 서로의 시각을 넓혀줄 수 있는 방식을 찾는다. 상대방의 경험이나 생각을 경청하며 대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자신의 생각이 상대방을 압도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이는 대화라는 일종의 “언어 게임” 속에서 교양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이 게임의 규칙은 “상대방의 가치를 존중하고, 대화를 통해 서로 배우며, 공유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회사에서의 협상 상황을 들 수 있다. 교양 있는 사람은 협상이 단순히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호 윈윈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게임이라고 본다. 교양은 상대방의 입장과 가치를 이해하고, 협상 과정에서 상대방의 자존감을 지켜주며, 궁극적으로는 서로의 입장이 최대한 조화롭게 수렴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게임의 규칙은 ‘상호 존중과 이해를 통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이며, 교양은 이 규칙을 준수하고 더 나아가 게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교양은 이런 ‘게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규칙과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교양 있는 사람은 단순히 규칙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규칙을 재해석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더 풍부한 상호작용을 만들어낸다. 마치 음악 연주자가 정해진 악보를 연주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을 담아내는 것처럼, 교양은 각기 다른 인간 관계 속에서 각기 다른 형태의 ‘연주’를 요구한다.

요즘 세간의 화제들을 보자니 교양없는 것이 디폴트인 세상이 되어버렸지 싶다. 모두들 날것으로만 발화하고 반응하네. 게임의 룰을 지키는 양식미가 없어…

카테고리: Odds & Ends

0개의 댓글

답글 남기기

아바타 플레이스홀더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