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 시절, 영퀴방 죽돌이였습니다만…

영퀴방의 몇가지 금과옥조 중의 하나는,

“자주 출제되는 영화는 볼 만한 영화이다.”

였습니다.

옛날에는 감독과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달달 외울 정도의 시네키드시네퀴저였다고 자부했으나, 최근에는 볼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예전만큼 관심이 없어서이겠지요. 그래서 후회하지 않을 영화를 고르기에 대한 방법을 이래저래 시험해보게 됩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아무래도, 직접 영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일겝니다. 내 영화 취향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누가 뭐래도 저 자신이니까요.

그러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모르는 채로 자신에게 맞는 영화를 찾을 수는 없거든요.

개인 프로파일링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구현하기 쉬운 건 필터링입니다.

“SF, 테리 길리엄, 조니 뎁, 19세기 영국, 동성애, 저예산, 재즈, 슬랩스틱, 내가 읽은 소설 원작…”

이런 키워드들을 다양하게 AND, OR, XOR, NOT등의 논리연산을 거쳐 필터링을 하면 “내가 좋아할 영화”와 “내가 싫어할 영화”를 이론상 구분할 수 있다는 소리죠.


문제는, 필터링의 체 눈구멍이 촘촘하면 촘촘할 수록 그 사이를 빠져나가 흘리는 정보가 많아진다는 점. 또, 필터링의 대상은 결국의외성이나 참신성은 없다는 뜻입니다. 우연히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가 좋았다… 같은 경험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실은 그보다 더 큰 어려움은, 이런 필터링을 하고 있기가 귀찮다는 겁니다. 실은 제가 지금까지 좋아했던 영화가 알고보니디아스포라를 원형으로 갖는 영화더라. 실은 은근히 제가 마초끼가 있다더라… 이런 건 본인 스스로도 잘 모르고 또 구체적으로필터링 수단으로 삼기도 애매하거든요. 또 일일이 모든 필터를 열거하기도 어렵잖아요. 사람의 취향이란 복잡한 편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지동 필터링을 위해 나오는 것은 행동분석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가타카, 페이첵, 슈퍼맨”을 봤다면, 저는 아마도 “SF”에관심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혹은, “운명을 휘두르는 프로타고니스트-안타고니스트 갈등”을 내면적으로 원하고 있는 건지도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행동분석(log-activity analysis)은 구현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위의 괄호안에 적은 것처럼,개인적인 의미소를 개인에 맞춰 추출해내는 것은 현재로서는 인공지능으로는 불가능한 현실이거든요. 게다가 역시 필터링의 단점은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요즘 유행한다는 소위 집단지성으로 영화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관객 100만이라면 어찌 되었건 봐볼만한 가치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거죠. 혹은 네이버 영화별점 별 다섯개라든가요.

그러나 이 역시 문제가 없진 않겠죠. 대중은 불가해하며 변덕스럽습니다. 나아가서, 타인의 취향이 나의 취향은 아닐 수 있다는것. 그러니까 100만 관객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받았다는 “실미도”는 저한테는 잊고 싶은 영화 첫 순위로 꼽힐 수도 있고,남한테 권하기는 껄끄럽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구를 지켜라”를 남몰래 한국영화 베스트10중 하나로 꼽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요.

실은 그나마 선호하는 방법 중 한가지는, 비평가들의 한 줄 비평을 참고하는 것입니다. 아, 물론 지금처럼 영화평론가들의권위가 땅바닥을 기고 있을 때도 말이지요. 4천만이 감독이자 평론가인 시대에 무슨 시대에 역행하는 소리냐…일 수도있겠습니다만. 4천만 평론가들의 자칭 평론은 존중은 합니다만, 그게 나와 꼭 들어맞는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지요.(단순히산술적으로만 생각해봐도 4천만의 의견은 저와 일치하기보다는 다를 가능성이 더 높겠지요.)

그럴바에야 차라리 “정성일씨”가 추천하는 영화를 보는 쪽이 저한테는 실패할 가능성이 덜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정성일씨의평론”을 알고 있고, 자연인 정성일씨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라도, 영화평론가로서 그가 써왔던 글과 그의 취향을 알고 있기때문입니다. 나자신과 100%일치하지는 않아도 70%정도는 일치하더라.. 그러니 정성일씨의 영화추천을 참고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혹자에게는 ‘그’가 “듀나”일 수도 있고, ‘이무영’일 수도 있으며, 혹은 ‘이규영‘일 수도 있겠지요.

조금 더 발전시키면,

“우리 마누라가 고르는 영화는 그나마 괜찮아.(연예정보에 빠삭한 마누라님들 덕에..)”

“김대리가 영화고르는 안목이 좀 있지. 우리회사 이번주 문화행사는 역시 김대리가 선택하도록 해.”

“이글루스의 XXXX님이 봤다는 영화는 제법 저랑 취향이 비슷한 것 같아요…”(혹은, XXXX님은 나랑은 취향이 정 반대! XXXX님이 좋다고 하는 영화만 피하면 돼… 라든가.)

그러니까, 나 자신이 정보를 수집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수고스럽고 귀찮고,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타인들의 선택을 무조건 따를 수도 없다면…

내가 ‘신뢰하는 누군가(들)’에게 그 선택을 위임하는 편이 그나마 나은 대안일 수 있다는 거죠.

이러한 전략은 실은, 오프라인의 “신문선택의 전략”과 비슷합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시각에 대한 가치관’이라는 관점에서충성도 높은 독자가 신문을 선택하는 것은, 그 자신의 가치관을 신문사에게 위임하는 셈인거죠. 조,중,동,한,경,대,오마이뉴스에서스포츠찌라시까지 다양한 신문들이 있고, 실제적으로 다루는 기사는 거의 대동소이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가장 비슷한신문을 고른다는 것은 해당 신문사의 편집진이, 자신이 기대하는 그만큼의 시각을 가져줄 것이라 믿고 위임하는 것이라 할 수있습니다.

약속시간인 저녁 7시까지 시간때우기가 쉽지 않네요. 일본어를 못하는 관계로 영화로 시간때우기는 포기. 생각나서 끄적대봤습니다.

카테고리: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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