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들이 디자인을 맘에 안들어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떤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프로세스 단계에서 당연히 고객을 우선해야 한다는 명제는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흔히 간과하는 부분중에 하나는 고객이 단지 우리 상품의 사용자, 구매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런 외부고객외에도, 실제로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관계자들도 일종의 내부고객인 셈이다.
즉, 기획자라면 단순히 실제 서비스를 이용할 소비자만을 대상으로 기획안을 만드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만들 개발자나 디자이너, 경영진들, 심지어 같은 기획팀의 다른 팀원들까지도 감안한 기획을 해야 한다는 점. 물론 이건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경영진들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
예컨데, 이 웹페이지에서 어째서 폰트가 14pt인 것인가… 아, 물론 디자이너는 당연히 ‘사용자의 시각에 대한 사용자경험을 고려하여’라고 대답하겠지만. (그런데 솔까말 대개는 그냥 그순간 디자이너의 삘아닌가?)
폰트사이즈가 맘에 안든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이 웹서비스의 타겟 고객은 이미 보고드린 것 처럼 빨강머리 왼손잡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이들에 대해 한국갤럽연구소에서 1200명을 상대로 표본조사한 결과, 이들의 시상하부에서의 호르몬 대사의 특징상 생리학적인 반응속도의 지연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바, 이로 인한 이들의 모니터구매패턴이 대개 삼성패널을 이용한 LCD 21″를 사용하는 것으로 판단되어 이에 가장 최적인 14pt 궁서체를 사용했습니다.”라고 즉석에서 술술 말할 수 없다면 그냥 조용히 다시 디자인하는 게 정신건강안녕 및 명랑조직생활을 위해 최적.
나의 경우는 대개, “아, 좋은 의견이십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다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멘트를 날려주고, 대충 요구사항을 정리한 후에, 다시 한번 내맘대로 만들어서 들이대면 대개 두번째에는 매우 만족하면서 OK된다. 심한 경우에는 날짜를 좀 두고, 처음 만들었던 것을 다시 들고가도 통과되는 행운도 있다.
사실, 이런 케이스들은 뭐랄까, 자기 자신이 상급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인 딴지인 경우들이 많아서. 실상 임원진급이 실무자도 아닌바에야 실무자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는것임. 실제로 그들은 아마츄어니까. 임원진의 간섭에 의한 대표적인 참사가 몇년 전 코리아닷컴의 무지개디자인 사태아니었나…
그렇다고 그들의 권위 및 권력에 반항하거나 하는 건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니, 그들이 필요한 건 진짜로 사용자에게 적합한 폰트 사이즈를 찾는 게 아니라, 그들의 존재가치를 인정해주고(하긴 임원진들은 골프나 치라고 있는 직책아니던가) 그들이 여전히 현역만큼이나 뛰어난 능력자라고 추켜세워주는 것. 그 조건만 맞춰준다면 똑같은 디자인을 또 들고 가도 통과될 수 있다니깐…
이런 지경까지 오는 게 귀찮다면, 애초에 두가지 시안 – 하나는 통과되기를 바라는 공들인 작업물, 또 하나는 일부러 못만든 탈락후보물 – 을 들고 들어가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까지는 잘 안하는데, 그 이유는 두가지를 만드는 게 귀찮을 뿐더러, 대개 그런 지경까지 가는 조직이라면 의외로(?) 탈락후보물을 선택하는 케이스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러면 더 난감하기에.
아, 물론 위에 말한 건 지금 회사 이야기는 절대 아님. 😀
ps. 여담인데, 그런데 실제로 사장님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개발자라든가, 이사님보다 디자인 못하는 디자이너가 실제로 있으니 그것도 난감한 일이긴 하더라.
0개의 댓글
민노씨 · 2011-01-12 06:03
중간에 '쏠까말'이 뭔가 하고 검색하려다가…
아,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를 줄인 표현이구나, 이랬습니다. ㅎ
이런 축약표현들 종종 사용하시는 것 같네요. : )
재밌습니다.
써놓고 보니 엉뚱한 댓글이네용… ;;;
필로스 · 2011-01-12 06:03
1안을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2안은 대충 만들고 3안은 그냥 머리수 채우려고 만든 안을 들고 갔는데 사장님이 3안을 선택할 때가 제일 당황스럽죠.
ps부분과 관련해서 실제로 그런 일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근데 그런 경우는 후배를 잘 못 키운 임원의 문제라고 저는 생각하는 편입니다.